어느 ​프랑켄슈타인의 외출

가장 부자연스러운 자연 상태로. 나체로.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괴물은 자기 정체성에 부과된 불투명성에 힘겨워한다. 인간들과의 평화로운 동거를 실험하지만, 그것은 차별로 귀결된다. 이 안타까운 피조물은 자의식에 시달린다. 책이 출판된 19세기 초 이래,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은 과학 문명이 낳은 부작용, 더 나아가 혼종성과 타자성의 대표적 기호로 인용되어오곤 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사회담론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트랜스젠더 인구에 대한 적대적 호기심의 표현으로서 새로운 상징성을 갖게 된다. 나는 행복한 괴물, 아니 그보다 더 행복에 겨운 트랜스젠더를 염원한다. 자연의 실패작이자 배신자, 이 모든 낙인을 뒤집어 쓴 채 자연을 찾을 수 있도록. 모든 인류의 첫 기억이자 다른 모든 생명의 영원인 채로. 가장 부자연스러운 자연 상태로. 나체로.

 

          옷이라는 사회성의 허물을 벗자 남은 자리엔 몸이란 허울만 남겨진다. 역사의 요구에 따라 누드 장르는 종교적 색채를 벗게 되었다. 과거와 달리 성기는 이제 암시나 윤곽과 같은 소극적 형태로 등장해 보는 이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시선은 피부와 그의 굴곡을 배회한다. 이와 같은 기획된 부재는 성기라는 절대적 차이에 대한 상상력을 젠더의 선행조건으로 삼는다. 역설적으로 몸의 모든 부분이 공평하게 노출되는 순간에야 몸 전체가 성기에 부여된 상징적 역할―정체성의 증거―을 언제나 이미 수행하고 있음이 또렷이 드러난다. 성기에 고유하게 부여된 이 힘이 실제로는 지배적 독해의 결과물임 역시 발견할 수 있다.

 

          이 웹 사이트에서는 트랜스젠더라는 렌즈로 나체를 포착한다. 트랜스/젠더를 지목 가능한 실체로 제정하는 상식에 도전하기 위해 “본질”이 은폐를 통해서만 존속할 수 있는 모순임을 시각화한다. 트랜스젠더의 몸을 그처럼 ‘방치된’(abandoned), ‘낙후된’(antiquated), ‘전유된’(appropriated), ‘절단된'(amputated) 공간들에 위치시킨다. 다양한 물질성을 품고 있는 공간들을 다음 4가지 테마(natural, industrial, historical, urban)로 세분화해 웹 사이트에 전시하고 있다. 갤러리 곳곳에서 이 괴물은 육체와 살덩어리 사이를 방황하며, 때로는 동물이 때로는 돌이 되기도 한다. 젠더의 유물론과 관념론에 사이좋게 양다리를 걸친 채로. 나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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